금산분리 완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매년 한 차례 세계 각국의 투명성 지수를 발표한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 청렴도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하위권을 독점하는 양상이다. 한국은 매해 40위 안팎의 투명성을 기록해 간신히 체면을 차리고 있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투명성 지수가 비단 정치적 투명성만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 활동 등 경제적 청렴도 역시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부패 근절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인권․노동․환경․反부패 등 4개 부문에서 국제 사회의 협력을 도모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전 세계 주요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협약이다. 전 세계 CEO들은 유엔글로벌콤팩트를 통해 反부패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부패 근절을 위한 노력은 전 세계적 관심사이자 추세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가 反부패 기류에서 퇴보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가 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을 4%에서 1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산업 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핵심 취지라고 한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다듬어져 대기업의 금융자본 잠식을 억제하는 중요 정책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대기업의 은행 지분을 확대하는 정책은 단순히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산법의 근간을 흔드는 조처다. 정부의 원안대로라면 대기업이 은행을 사유화할 수 있는 법적 발판이 마련돼 대기업 내 부패 문제는 만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임은 자명하다.
 

은행 지분 4%에서 10%로의 조정은 단순한 수치상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은행의 핵심 주주로 떠오르게 되고,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이 가능해지고 차명 계좌 추적은 더욱 어려워진다. 탈세는 물론, 은행은 돈세탁이 이뤄지는 암시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한 가지 방도가 있긴 하다. 대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도덕성을 기대하기엔 그동안 굵직한 부패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사회적 논란이 된 삼성의 비자금 조성 사건이라든지 대우 그룹이 분식회계를 시도한 흔적 등이 대기업 부패사에 오점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한나라당에 배달됐던 떡값도 결국 비자금으로 조달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의 은행 지분을 확대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삼가야 한다. 그러니 자꾸만 거대 자본에 대한 환상을 품고 대기업 봐주기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위정자는 일개 거목만을 바라지 않고 전체 숲을 아우른다. 정부는 대기업 봐주기 발상을 그만 버리고 중소기업 등 다른 부문의 산업을 육성하는 데 경주하길 바란다. 또 대기업은 정부의 시책에 편승하지 말고 늘 부패에 항거할 것을 당부한다.

by 칭기스킴 | 2008/10/15 22:21 | INSPIRATI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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